본문 바로가기
교육

16~17세기 동아시아 정치적 상황, 정묘 병자호란의 배경, 전쟁 이후 일본 재침략 대응책, 역사를 통해 배울 수 있는 점

by moneycopyman 2023. 4. 9.
반응형

[ 일본 사무라이 ]

다음 글에서는 16~17세기 동아시아 정치적 상황과 정묘, 병자호란의 배경 및 전쟁 이후 일본 재침략 대응책 대한 내용과 역사에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점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목차

1. 16~17세기 동아시아 정치적 상황

2. 정묘, 병자호란의 배경

3. 전쟁 이후 일본 재침략 대응책

4. 역사를 통해 배울 수 있는 점

1. 16~17세기 동아시아 정치적 상황

16~17세기 동아시아의 정치적 상황은 중국, 일본, 조선(한반도)에서 각기 다른 역사적 사건들이 일어나는 시기였다. 중국은 명나라에서 대만성황, 명나라 내부의 분쟁, 그리고 청나라의 출현으로 동요하고 있었고, 일본은 쇼군 체제가 정착되면서 그 권력이 강화되고 있었다. 한반도는 조선시대를 맞이하여 다양한 정치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중국에서는 명나라(1368-1644)의 대만성황(1498-1568)이 후계자가 없어 친비족인 군주들이 권련을 장악하고 중앙집권적인 정치 체제를 훼손하였다. 이후 청나라(1644-1911)가 출현하여 중국의 정치적 혼란은 이어졌다.

 

일본에서는 토요시대(1603-1868)에 쇼군 체제가 장착되면서 그 권력이 강화되었다. 이 시기 일본은 해외무역과 교류를 증진시키며 국내적으로 경제 발전과 함께 문화적 발전을 이루어냈다.

 

한반도에서는 1392년 조선왕조가 세워지면서 조선시대(1392-1897)가 시작되었다. 조선은 무신정치를 통해 중앙집권적인 체제를 유지하였고, 경제적으로는 농업 중심의 자연 경제를 유지하면서도 조선과 중국의 교류를 적극 추진하였다. 하지만 이 시기 조선에서는 일본의 침략에 대한 대비가 부족하였고, 외고적 약점도 존재하였다.

2. 정묘, 병자호란의 배경

정묘(1592년)와 병자호란(1636-1637년) 중국과 조선 사이에서 발생한 전쟁으로, 각각 후금과 만주족의 공격으로 인해 일어난 사건이다. 이 두 전쟁은 역사적으로 중국과 조선의 상황과 배경이 매우 다르기 때문에 각각 다른 원인과 전개과정, 결과를 가지고 있다.

 

정묘 전쟁은 1592년 7월에 일본의 토요타치 히데요시가 20만여 명의 대군을 이끌고 군사적 침략을 시작한 것으로, 조선을 비롯한 중국과 주변 국가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힌 전쟁이다. 이전의 임진왜란과 마찬가지로, 이 전쟁에서도 일본군은 조선을 침략하면서 이뤄진 격렬한 전투로 조선의 문화재와 역사적인 유산을 파괴하였고, 또한 인구 감소와 경제적인 타격을 입히는 등 조선의 국력을 크게 흔들었다.

 

이에 반해 중국은 명나라 시기에 대만성황(1498-1568)의 출현으로 내부 분쟁이 심화되었고, 1644년 청나라가 출현하기 전까지 명나라는 여러 차례의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특히 정묘 전쟁 이전의 명나라는 후금의 침략에 직면하여 국력이 약화되었다. 

 

이와 같은 배경에서 일어난 정묘 전쟁은 중국의 관심이 조금씩 떨어지게 되면서 후금에 대한 조선의 보호 요청이 무시되는 등, 조선은 혼자서 일본군을 막기 위해 많은 희생을 감수해야 했다. 결국 일본국은 1598년 8월에 다시 물러나면서 이 전쟁은 종료되었다. 이전과는 다르게 조선은 외교적인 대책을 세워 중국과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후속 대응책을 마련하였다.

3. 전쟁 이후 일본 재침략 대응책

정묘 전쟁 이후 조선은 일본의 재침략을 대비하여 강화된 군사력과 외교적 대응책을 마련했다.

먼저, 군사력 측면에서는, 전쟁 당시 일본군의 공격을 견디지 못하였던 조선은 일본식의 군사적 수단인 선박과 총기를 도입하고 군사 훈련을 강화하였다. 특히 조선이 정식으로 총기를 도입한 것은 전통적인 병법이 아닌 일본식의 현대화된 병법을 참고하여 현대를 추진한 결과이다. 이를 통해 조선은 군사적으로 더욱 강화된 모습을 보이게 되었다.

 

또한 외교적 대응책 측면에서는, 조선은 일본과의 교류를 금지하는 '세도 정책'을 시행하였다. 이는 일본이 다시 조선에 침략을 할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 아래, 일본과의 교류를 최소한으로 제한함으로써 다시 일본의 침략을 예방하려는 것이었다. 또한 조선은 중국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이전과는 달리 중국의 지원을 받아 외교적인 행보를 이어나가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과의 외교적인 대비는 오랜 시간 동안 유지되지는 못했다. 조선과 일본은 이후 여러 차례의 교전을 겪으면서 서로에 대한 불신이 깊어졌고, 결국 일제 강점기에 이르러 일본은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게 되고 조선에 대한 강압적인 지배를 어어나가면서, 조선의 국가적인 정체성과 자주적인 발전을 억압하였다.

 

따라서 정묘 전쟁 이후 조선이 일본에 대한 대비를 강화한 것은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지만, 결국 일본에 대한 대비가 부족해던 것이 사실이다.

4. 역사를 통해 배울 점

첫째는 국가 간의 관계가 중요하다는 점이다. 정묘 전쟁 이후 조선이 다시 일본에 대한 대비를 강화한 것은, 일본과 조선의 관계가 악화되고 침략의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국가 간의 관계는 전쟁을 일으키거나 평화를 이룰 수 있다. 따라서 국가 간의 관계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는 군사적 수단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정묘 전쟁 당시 조선은 일본의 군사적 공격을 견디지 못하였고, 이에 따라 군사력을 강화하였다. 이르 통해 국가는 침략에 대한 대비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군사적 수단은 국가의 안보를 보장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셋째는 역사는 반복된다는 점이다. 정묘 전쟁 이후 조선은 일본에 대한 대비를 강화하였지만, 이후 일제 강점기에 이르러 일본은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었다. 역사는 반복되기 때문에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미래를 예측하고 대비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역사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은 인간의 실수이다. 정묘 전쟁 당시 조선의 신하들은 왕과의 충성심 때문에 세력을 키우기 위한 비밀 동맹을 맺었다. 하지만 이러한 비밀 동맹은 결국 국가의 안전을 위협하는 결과를 낳았다. 인간은 실수할 수 있기 때문에, 역사를 통해 배운 교훈을 바탕으로 지혜롭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역사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은 다양하며, 그중에서도 국가 간의 관계, 군사적 수단, 역사의 반복, 인간의 실수 등이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를 토대로 미래를 예측하고 대비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반응형

댓글